대홍수 생각(1)이 가라앉자마자,

산토끼 한 마리가 콩꽃과 흔들리는 방울꽃들 사이에 멈춰 거미줄 사이로 무지개를(2) 향해 기도했다.

! 은신하던 보석들, ― 어느새 바라보던 꽃들(3).

지저분한 큰길에 진열대들이 섰고, 판화에서처럼 저 위에 층을 이룬 바다로 저들을 쪽배를 끌었다(4).

피가 흘렀다, 푸른 수염의 집에서, ― 도살장에서, ― 신의 인장(印章)이 유리창을 흐리던 서커스장에서, 피와 젖이 흘렀다(5).

비버들이 집을 지었다(6). 다방마다 «마자그랑»(7) 커피가 김을 내었다.

아직도 물이 줄줄 흘러내리는 유리 저택에서(8) 상복을 한 아이들은 불가사의한 그림들을 쳐다보았다.

문 하나가 소리를 내며 닫혔다. 마을 공터 위, 풍향계와 사방의 종탑 수탉들의 이해를 받고 아이는 팔을 휘저었다, 눈부신 소나기 아래(9).

마담 ***알프스에 피아노를 놓았다. 십만 개의 성당 제단에서 미사와 첫 영성체가 거행되었다.

대상들이 떠났다. 빙하의 혼돈과 극지의 어둠 속에 찬란한 호텔이 섰다(10).

이윽고(11) 달은 타임 사막 여기저기서 자칼이 우는 소리를, ― 나막신 신은 목가는 과수원에서 그르렁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그러자 보랏빛 삼림에서(12), 싹터 오르며, 유카리스가(13) 내게 말했다, 봄이 온다고.

솟으라, 연못이여, ― 거품이여, 다리 위로 숲을 넘어 흐르라, ― 검은 천이여 오르간이여, ― 번개여 천둥이여, ― 오르라 흐르라, ― 이여 슬픔이여, 오르라 대홍수들(14) 일으켜 세우라.

그것들이 사라진 뒤로는, ― 오 파묻힌 보석이여, 벌어진 꽃들이여! ― 권태이니! 그리고 여왕, 흙단지에 잉걸불을 밝히는 이 마녀, 저만 알고 우리는 모르는 것을 결코 말하려 하지 않을 것이니(15).



 ― Arthur Rimbaud, Après le Déluge

 


(1)
대홍수는 타락한 세계의 정화와 새로운 세계의 시작을 표현하는 일반적인 신화적 주제다. 그런데 어째서 대홍수라는 생각인가? 성서에서 대홍수를 일으키는 것은 신의 분노다. “하느님께서 노아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모든 살덩어리들을 멸망시키기로 결정하였다. 그들로 말미암아 세상이 폭력으로 가득 찼다. 나 이제 그들을 세상에서 없애 버리겠다.”(창세기 6:13)

(2) 무지개는 대홍수가 다시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신의 약속이다. “내가 너희와 내 계약을 세우니, 다시는 홍수로 모든 살덩어리들이 멸망하지 않고, 다시는 땅을 파멸시키는 홍수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 내가 무지개를 구름 사이에 둘 것이니, 이것이 나와 땅 사이에 세우는 계약의 표징이 될 것이다.”(창세기 9:11-13) 대홍수는 다시는 하늘에서 내려오지 않을 것이다. 대지가 스스로 만들어내야 한다.

(3) 대홍수가 끝나자마자(Aussitôt)’ 등장하는 토끼와 줄을 치는 거미는 가장 빠른 동물이다. 탄성과 함께 시선이 확장되었을 때 꽃들은 이미(déjà)’ 피어 있다. 자연의 재생은 속도감 있는 필치로 형상화된다.

(4) 인간들은 등장하자마자 더러운길에서 물건을 팔고 항해를 한다. 신이 내린 대홍수 이후 이전의 문명으로 돌아가는 것 역시 신속하다. “정녕 모든 살덩어리가 세상에서 타락한 길을 걷고 있었다.”(창세기 6:12) 다음은 도살장들(abattoirs)’에서 일어나는 친족 살해다. ‘푸른 수염(Barbe-Bleue)’은 프랑스 전래 동화의 주인공으로 아내들을 죽인 자다. “세상은 폭력으로 가득 차 있었다.” (창세기 6:11) ‘신의 인장이 곧 무지개라면, 신의 약속이 어렴풋하게 개입을 시도하는 세계는 서커스장에 불과하다.

(5) 이상의 주석을 통해 살펴본 대홍수 생각의 전도가 결정적이 된다. 대홍수 이후 선택된 민족에게 약속된 젖과 꿀이 흐르는 땅대신, 대홍수가 끝나자마자 피와 젖이 흐른다.

(6) 비버들은 집을 지으며 강의 흐름을 바꾼다. 이것은 정화된 자연의 원초적인 질서를 해치나 한편으로 대지에서 비롯한 홍수의 가능성을 암시한다.

(7) 19세기 알제리의 마자그랑 지역에 주둔했던 프랑스 군인들이 마시던 커피로, 물이나 독한 술을 타서 마시기도 했다.

(8) 초고에는 la maison en vitres라고 되어 있다. 랭보가 상상한 것은 유리로 된 집이라는 기이한 풍경일 가능성이 있다. 투명하고 깨지기 쉬운 유리 저택의 이미지는 불투명하고 단단한 방주의 이미지와 반대이다.

(9) 풍향계들에게 이해된아이가 팔을 휘젓는다는 표현을 아이의 의지와 행동이 풍향계를 다시 돌게 한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한편 대홍수의 생존자 중에서 처음 문을 열고 나와 행동을 개시하는 인물은 연로한 가장 노아가 아니라 어린아이이다. 대홍수가 상징하는 쇄신의 열망과 희망은 『성서』의 그것보다 한층 근본적이나, 그것은 이제까지 제시된 타락상의 부활과 극적 대조를 이룬다.

(10) 토끼 한 마리에서 시작한 시적 공간의 확장이 사막과 빙하로 세계의 끝까지 나아가는 한편, 시의 구성 측면에서는 시상이 전환되는 데 필요한 적막이 이루어진다.

(11) 앞 두 행의 수상한 이미지들은 여기서부터(Depuis lors) 수상한 전조들로 발전한다. 자칼이 삐약거리고’ ‘목가가 나막신을 신는 등 시인은 언어의 질서를 교란함으로써 세계의 질서가 흐트러지는 효과를 창출한다.

(12) Futaie는 크게 자란 나무숲을 뜻한다. 숲이 보라색으로 보이는 것은 사방이 어두움과 함께 젖어 있음을 암시한다.

(13) 유카리스는 페늘롱(1651-1715)『텔레마코스의 모험』에 등장하는 요정으로 칼륍소의 시중을 들며 텔레마코스의 연인이 되는데, 본래 희랍 신화에서는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다. 또 유카리스는 중남미에 서식하며 대단히 흰 꽃을 피우는 식물의 이름이기도 하다. 다른 가능성은 희랍어 어원을 따라 은총이라고 읽는 것이다.

(14) 신의 대홍수가 단수의 대홍수라면 시인이 기원하는 대홍수는 복수의 대홍수로서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대홍수가 아니다. 대지가 스스로 대홍수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이 정화의 가능성은 소진되지 않을 것이다.

(15) 정화의 가능성이 없다면 세계의 비밀도 밝혀질 수 없다. 물로 파괴되고 되살아나는 세계 속에서도 그 비밀은 불로 표상된다. 이 역설적인 이미지에서 시인의 불에 대한 친화력을 추정해볼 수 있다.



5월에 번역하고 수업 시간에 발표한 랭보의 시. 아래 사이트에서 정확한 원문을 구할 수 있다.
http://abardel.free.fr/tout_rimbaud/les_illuminations.htm

2009/07/02 18:10 2009/07/02 18:10

음반평 몇 장

2009/06/18 22:47 / 그리고 음악

알베니스

6개의 스페인 무곡, 6개의 작은 왈츠, 6개의 살롱 마주르카

길레르모 곤살레스(피아노)

NAXOS 8.572196

 

알베니스는 생애의 대부분을 영국과 프랑스에서 주로 오페라 작곡가와 피아니스트로 활동했으나 국적을 막론하고 국민악파의 가장 성실한 작곡가로 불릴 만한 인물이었다. 고향 스페인의 뜨거운 리듬과 기타를 비롯한 스페인 악기들의 주법, 쇼팽풍의 극히 섬세한 화성과 형식을 결합시킨 알베니스의 피아노 음악은 하나하나가 집요한 암중모색이었다.

이 음반에 실린 음악은 알베니스가 20대 시절에 쓴 피아노 독주를 위한 춤곡들로서 이 암중모색의 정수를 수록하고 있다. ‘이베리아고예스카스라는 걸작들의 씨앗이라 할 만하다. ‘6개의 스페인 무곡은 그 중에서도 매력적인 작품으로서 유명한 스페인 조곡에 준하는 대접을 받을 자격이 있다. 스페인과 쿠바의 리듬을 다채로운 주법으로 재현하는 데 성공했을 뿐 아니라, 쇼팽의 영향이 보다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가운데, 이 춤곡들은 알베니스가 쓴 가장 뛰어난 선율들을 가지고 있다. ‘6개의 작은 왈츠‘6개의 살롱 마주르카역시 젊은 시절의 작품으로서, 당대 살롱 음악을 따르면서도 어렴풋한 스페인의 억양에 상당한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스페인 피아니스트 길레르모 곤살레스는 이 작곡가의 권위자로 불릴 자격이 있는 듯하다. 이 음반에서 그는 전집 녹음다운 신중한 해석으로 일관하고 있는데, 잘 정제되어 빛나는 톤, 충실하고 따뜻한 감정 표현은 찬탄할 만하다. 초여름에 더없이 어울리는 음악이다. 그러나 감동을 위해서는 상상력이 더 필요하다.

 

 

카발레프스키

피아노 소나타 전집

알렉산드르 도신(피아노)

NAXOS 8.570822

 

카발레프스키는 어린이를 위한 작품집으로 유명하지만 한국에 알려진 것보다 훨씬 중요한 작곡가로서, 호로비츠나 모이세이비치 같은 거장들이 그의 피아노곡을 중요한 레퍼토리로 다루었다는 사실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퇴조하던 모더니즘과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절충하여 러시아 피아노 음악의 전통을 재정립하고, 스크랴빈과 프로코피예프 등 선배들의 스타일을 폭넓게 종합한 것은 무엇보다 카발레프스키의 공적이다. 그의 피아노 소나타 전집이 낙소스에서 출반된 것은 뒤늦게나마 의미가 각별하다.

그의 피아노 소나타는 단 세 곡이지만 모두 충실하고 야심만만한 대작들로서 무게가 가볍지 않다. 특히 1945년 작품인 피아노 소나타 2번은 놀라운 힘을 가진 걸작으로서 카발레프스키 피아노 음악의 정점을 이룬다. 음반이 끝날 때까지 손에 땀을 쥐는 긴장을 기대해도 좋다.

브라질 출신의 알렉산드르 도신은 젊지만 당당한 거장이다. 보기 드문 스케일과 집중력을 요구하는 음악을 맞아 그는 한치도 밀리지 않고 카발레스프키의 음악적 심연을 진지하게 탐구해 나간다. 카발레프스키가 구상한 새로운 피아노 음향을 전달할 만한 깊이를 충분히 갖추고 있고, 청자에 따라 형식적으로 다소 방만할 수 있는 음악을 긴장감 있게 추진해나갈 수 있는 통제력도 갖추고 있다. 조금 유려하기를 바랄 수도 있겠으나 이 곡들을 연주하는 데 본질적인 결점은 아니다. ‘그의 연주는 정말 강한 체험이다라는 마르타 아르헤리치의 평가는 과장이 아니다.

 

 

야나체크, 하스, 마르티누, 수크

내밀한 연습곡, 안개 속에서 외

라다 발레쇼바(피아노)

Avie AV 2142

 

체코는 보헤미안이라는 말의 어원을 제공한 나라이기도 하지만 클래식 음악사에 남긴 음악적 색깔은 분명하지 않다. 오히려 보헤미안이라는 말이 국적 불명의 자유인들을 은유하는 데 쓰인다는 점을 상기하면 이 음반의 음악적 정체성에 보다 잘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이 음반에 실린 야나체크, 하스, 마르티누, 수크의 음악은 복잡하고 낯설지만 넓게는 낭만주의 음악으로 분류될 수 있다. 아주 개인적인 방식의 명상과 모라비아 지방의 동화적인 전원에 대한 취향이 이 음반의 깊은 일관성을 이루고 있다.

야나체크의 안개 속에서는 해결을 계속해서 유보하면서 악상을 진행하고, 노래보다는 뉘앙스로 곡을 가득 채우는 전형적인 야나체크 스타일의 곡이다. 최근까지도 안스네스 등 많은 연주자들이 녹음한 작곡가의 대표작 중 하나인데, 발레쇼바의 연주는 평균적이다. ‘내밀한 연습곡은 솔직한 선율을 담고 있지만 뉘앙스는 더욱 미묘한 음악인데, 연주는 조금 더 아쉽다. 발레쇼바의 톤은 다소 거칠고 연주에는 색채감이 필요하다.

재미있는 곡은 파벨 하스의 피아노를 위한 조곡이다. 이 곡의 억센 리듬과 변덕스러운 기분을 표현하면서 발레쇼바는 정말 자기 재능을 보인다. 마르티누의 미니어처 영화와 수크 은 조성에 충실한 소품들이지만 종잡을 수 없는 분위기와 특유의 생생함은 앞의 곡들과 다르지 않다. 발레쇼바의 연주도 진하고 자신이 있다. 좀더 고민을 기울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지우기 어렵지만.

 

 

베버, 멘델스존, 베를리오즈

푸르트뱅글러: 초기 녹음 3

빌헬름 푸르트뱅글러(지휘), 에리히 클라이버(지휘),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NAXOS 8.111004

 

낙소스 히스토리컬 시리즈의 푸르트뱅글러 초기 녹음 3집이 나왔다. 녹음 시기는 1929년에서 1935년으로, 1936년 나치 정권과의 마찰로 물러나기 전까지 베를린 필의 상임 지휘자로 재직하던 진정한 전성기 시절의 녹음이다. 초기 낭만주의 음악은 베토벤과 브람스 못지 않게 그의 장기였다.

베버의 마탄의 사수서곡과 간주곡, ‘무도에의 초대에서 푸르트뱅글러의 연주는 컬렉터스 아이템 이상이다. 그것은 베버 음악의 영원한 권위자에 의한 지도적인 녹음이다. 특히 마탄의 사수서곡이 들려주는 심각한 침잠과 단호한 리듬은 독보적이다.

멘델스존의 한여름밤의 꿈서곡과 헤브리드서곡에서도 오늘날 연주에서는 듣기 어려운 긴장감이 빛난다. 독일 전기 낭만주의의 꿈 같은 순진무구함과 푸르트뱅글러의 첨예한 진지함이 잘 어울린다는 것은 표면적으로는 이상한 일이지만 여하튼 음악의 역사는 이만큼 훌륭한 조합을 더 만들어내지도 못한 것 같다. 베를리오즈의 라코츠키 행진곡까지도 푸르트뱅글러는 아주 불타는 듯한 음악으로 만들어놓고 있다.

녹음 연대를 생각하면 푸르트뱅글러 특유의 주도면밀한 음향 설계를 기대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버는 기대 이상이며 아주 훌륭하다. 나머지 곡들은 세월의 한계가 뚜렷하고 복각도 크게 우수하지는 않다. 짧은 러닝타임을 에리히 클라이버 지휘의 한여름밤의 꿈발췌로 만회한 낙소스의 기획은 아주 충실하다.

 

 

펜데레츠키

아침기도 (Utrenja)

안토니 비트(지휘), 바르샤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바르샤바 국립 합창단 외

NAXOS 8.572031

 

낙소스에서 진행되고 있는 안토니 비트의 펜데레츠키 음반도 이로써 열두 장을 헤아리게 되었다. 비상한 노력이다. 이들 중 폴란드어 레퀴엠누가 수난곡은 그래미 상 후보에 오를 정도로 권위를 인정받았다. 바르샤바 필하모니와 국립 합창단이 꼬박꼬박 참여하고 있다는 것을 보아도 이 철저한 디스코그래피에 폴란드 음악계가 기울이는 역량이 보통 이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사실들을 나열하지 않더라도 이 음반의 진지함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극적일 뿐만 아니라 울림이 있다. 75분에 이르는 웅대한 작품인 이 아침기도(Utrenja)’1970~71년 사이에 작곡되었으며, 별도로 작곡된 두 부분, ‘그리스도의 매장그리스도의 부활로 이루어져 있다. 텍스트는 정교회 전례문인데, 라틴어와도 다르고 현대 폴란드어와도 다른 고대 슬라브어의 음성이 성악의 음색에 부여하는 색채가 분명하다. 자신만의 음향과 극적인 파토스를 자유자재로 다루면서 비장한 종교극을 연출하는 작곡가의 능숙함은 그의 기법이 1966년 작인 누가 수난곡이후 정점에 다다랐음을 보여주며 더불어 70년대 이후 펜데레츠키 음악의 큰 변화를 예감하게 한다. 다만 전체에 걸쳐 반복되는 조성을 가진 성가는 교회 전통에 충실하기보다는 다소 달다.

연주는 더 비교할 여지가 없다. 바르샤바 필하모니는 당분간 이 음악을 음반화할 수 있는 유일한 악단일 것이다. 그들은 이미 20년 전에 이 곡을 녹음한 바 있다.

2009/06/18 22:47 2009/06/18 22:47

원리는 자명한 것이 아니라면 불가피한 것이 되어야 한다. 음악이 들리는 순간 어떤 형식에 마주치는 것이 불가피한 것처럼.

2009/05/06 23:14 2009/05/06 2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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