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서론
나치의 강제 수용소가 한 인간 집단의 절멸을 목적으로 설계된 곳이고, 폭력의 무제한적인 지배를 실현한 곳이라도 해도 그곳은 하나의 세계였다. 이 세계는 나름의 전제와 법규를 가지고 시간의 리듬과 공간의 구조를 만들어냈으며, 제3제국의 과업이 완수되거나 철폐되기 전까지는 언제까지나 지속 가능한 것으로 보였다. 수용소 세계는 독일의 패전을 전후로 폭력적으로 와해되었다. 가령 아우슈비츠의 경우 110만여 명이 수용소 세계 속에서 희생된 이후, 6만여 명의 수인들이 독일군의 퇴각 행군에 끌려갔고 상당수가 희생되었다. 잔류한 7000여 명의 환자들은 열흘간 극한적인 고립 속에 방치되어 있다가 소련군에게 구조되었다. 거의 비유대인인 이감자 및 극소수의 탈출자 등을 포함하여 수용소 생존자는 약 20만여 명으로 집계된다.
생존자들 수용 이전의 생활 환경으로부터 영구적으로 유리되었다. 그들이 속해 있던 공동체는 소멸하거나 정치적인 이유로 갈 수 없는 곳이 되었으며, 그대로 남아있었다 해도 생존자들과 옛 공동체가 행복하게 다시 통합되기는 어려웠다. 무엇보다도 그들의 수용을 전후로 현대 사회의 성격과 인간 조건에 대한 그들의 인식이 결정적으로 변화하였다. 결과적으로 생존자들은 당대인들의 인식 능력을 초과하는 경험을 떠안은 채로 떠돌아야 했으며, 수용소가 더 이상 없다는 사실과 함께 수용소의 심층적인 원리들이 자신과 사회 속에 잠복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수용소 세계가 지속적인 박탈의 세계라면 수용소가 정지한 세계는 전면적인 불확실성의 세계이다. 해방은 이처럼 불완전한 이행의 과정이다.
수용소 증언 문학에서 해방 장면은 이 두 세계의 계면을 초점화하여 보여주는 기능을 한다. 대부분의 증언 문학이 그것을 작품의 시작이나 끝으로 삼고 있다는 사실로부터 알 수 있듯이, 이 계면은 불연속면이다. 로베르 앙텔므의 『인간』, 프리모 레비의 『이것이 인간인가』, 엘리 위젤의 『밤』은 모두 수용소의 해방 장면에서 끝난다. 그런데 이 해방 장면들은 모두 어둡다. 그들의 어조는 수용소의 가장 가혹한 현실을 묘사할 때와 다르지 않으며, 생명, 자유, 동지애, 연합군의 승리가 가져다 주는 감동은 철저하게 절제되어 있다. 이를 통해 수용소 작가들은 수용의 삶과 해방의 삶, 나아가 수용소와 이 세계의 관계가 죽음과 삶, 어둠과 빛, 악과 선으로 명료하게 분리되지 않는다는 점을 암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가정이 사실이라면 오늘날의 세계에서 수용소가 부정적인 위협으로서만 존재하고 있다고 판단하는 것은 충분하지 않으며, 수용소의 삶이 보다 적극적인 의미에서 우리의 삶 도처로 연장되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수용소와 우리 사회의 관계를 다시 생각해 볼 것을 촉구하는 이들의 글쓰기는 무엇을 목표로 하고 있는 것일까? 수인들이 해방을 행복하게 맞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수용소의 파국적인 기억이 사회로의 재통합을 막고 있기 때문일까, 혹은 근본적인 층위에서 수용소의 삶과 수용소 이후의 삶이 다르지 않다는 점을 예감했기 때문일까? 이 글은 앙텔므, 레비, 위젤이 문학적으로 형상화한 수용소 해방의 장면을 분석하면서 위의 질문들에 접근하고, 생존자들에게서 수용과 해방이 맺는 관계의 일단을 분석하여, 궁극적으로는 수용소의 존재를 사회에 대한 내적 성찰의 기준으로 정립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세 작가의 글에 집중적으로 언급되고 있는 자유의 개념을 탐구의 길잡이로 삼을 것이다.
II. 본론
1. 해방 장면과 자유의 의미
해방 장면이 수용소의 삶과 수용소 이후의 삶 사이의 불연속적인 계면을 초점화하여 보여주고 있다면, 이 장면에 대한 글쓰기는 『이것이 인간인가』나 『인간』에서 알 수 있듯 자유라는 단어로 집약된다.
La liberté. La brèche dans les barbelés nous en donnait l’image concrète. A bien y réfléchir, cela voulait dire plus d’Allemands, plus de sélections, plus de travail, ni de coups, ni d’appels, et peut-être, après, le retour.
자유. 철조망에 난 구멍은 자유에 대한 구체적인 이미지를 우리에게 심어 주었다. 잘 생각해보면 그것은 더 이상 독일인도, 선발도, 노동도, 구타도, 점호도, 그리고 어쩌면 나중에는 돌아갈 수 있다는 것도 의미했다.
On s’époumone à crier ― comme des enfants furieux que l’on ne voudrait pas reconnaître ― qu’on est libres, libres de rester au chaud, de manger dedans...
인정받지 못하는 성난 아이들처럼 우리는 목이 쉬도록 소리쳤다. 우리는 자유라고, 따뜻한 데 있는 것은, 안에서 먹는 것은 우리 자유라고......
수용소는 자유의 부정이다, 따라서 수용소의 부정은 자유이다. 이것은 엄밀하게 타당한 추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수인들의 정신을 사로잡고 있다. 자유는 두 작품의 마지막 몇 페이지를 지배하는 단어이다. 거기서 수인들이 말하는 자유는 압제받지 않을 권리, 박탈당하지 않을 권리, 그리고 살해당하지 않을 권리이다. 이것은 해방과 함께 수인들이 가지게 된 권리이며 수용소 안의 자유 개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수용소 밖에서 자유는 이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자유는 개인의 삶을 독립적인 총체로 구축하는 원리인 동시에 인간 군집을 정당한 사회로 구성하는 원리가 되어야 할 것이다. 수용소 안의 자유, 수용소의 붕괴가 수인들에게 부과한 자유는 수용소 밖 세계의 적극적인 자유로 전환될 수 있을 것인가? 이렇게 질문했을 때 앙텔므, 레비, 위젤이 제시하는 해방 장면의 자유는 문제적이다.
Notre premier geste d’hommes libres fut de nous jeter sur le ravitaillement. On ne pensait qu’à cela. Ni à la vengeance, ni aux parents. Rien qu’au pain.
Et même lorsqu’on n’eut plus faim, il n’y eut personne pour penser à vengeance. Le lendemain, quelques jeunes gens coururent à Weimar ramasser des pommes de terre et des habits ― et coucher avec des filles. Mais de vengeance, pas trace.
자유인으로서 우리가 맨 먼저 한 행동은 음식을 찾아 달려든 것이었다. 그 생각밖에 없었다. 복수도, 부모도 생각할 수 없었다. 오직 빵 뿐이었다.
배를 채운 뒤에도 복수를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다음날 몇몇 젊은이들이 바이마르로 달려갔다. 감자와 옷가지를 가져오기 위해, 그리고 여자들과 잠자리를 하기 위해. 그러나 복수는 흔적도 없었다.
수인들의 자유는 오직 생명을 회복하는ra-vitailler 데만 바쳐진다. 자유는 파괴된 과거를 청산하고(복수) 자신의 온당한 위치를 수복하여(부모) 정체성을 재구성하는 데 이르지 못한다. 수인들의 자유, 수용소 안에서 상상된 자유는 수용소의 종말과 함께 도래할 수 밖에 없지만 수용소 바깥에서 온전한 의미로 실현될 수는 없다는 사실이 분명해진다. 해방 장면은 기본적으로 독일군이 떠난 이후 수인들이 자기 자신 및 타인들과 인간적인 관계를 회복해 나가는 모습으로 규정될 수 있지만, 단체 명령을 내리며 갈등하는 모습, 잘 자리가 없어 밤을 새는 모습, 대량으로 방치된 시체, 더 많은 것을 소유한 막사에 노동력을 파는 모습, 수인으로서 학대받는 꿈, 동료의 죽음에 대해 느끼는 무력감 등으로 자유의 의미는 계속해서 축소된다. 어째서 자유는 또 한번 영원히 연기되어야 하는가? 우리는 앞서 수용소 안의 자유와 수용소 밖의 자유를 구분하고, 전자가 생명 보존과 불간섭의 권리라면 후자는 개인을 구축하고 사회를 구성하는 원리라고 규정하였으며, 또한 수용소 안과 밖의 세계가 불연속적임을 확인한 바 있다. 이 틀 안에서 위의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수용과 해방이 만들어 놓은 조건이 수용소 밖 자유의 실현을 어떻게 제한하고 있는지 탐구해야 할 것이다. 2장에서는 자유가 개인을 구축하는 원리가 된다는 점이, 3장에서는 자유가 사회를 구성하는 원리가 된다는 점이 문제가 될 것이다.
2. 자유의 위기: 개인적 관점
― Ne nous touchez pas... on est libres !
건드리지 마...... 우린 자유야!
자유인으로서, 그들은 건드려서는 안 되는 사람들이다. 이 말은 건드리지만 않는다면 그들이 무너지지 않고 스스로 인간의 가능성을 실현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함축한다. 그러나 엘리 위젤은 자신을 그러한 인간으로 보지 않는다.
Un jour je pus me lever, après avoir rassemblé toutes mes forces. Je voulais me voir dans le miroir qui était suspendu au mur d’en face. Je ne m’étais plus vu depuis le ghetto.
Du fond du miroir, un cadavre me contemplait.
Son regard dans mes yeux ne me quitte plus.
어느 날 나는 온 힘을 다해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 나는 맞은편 벽에 걸린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고 싶었다. 게토를 떠난 이후 나는 나를 본 적이 없었다.
거울 속에서 시체 하나가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나를 바라보는 그의 시선이 나를 떠나지 않는다.
수용과 해방 이후 처음 거울을 통해 본 자신의 신체는 전체로서의 인간이 아니다. 거울에 나타난 것이 시체라는 사실은 신체를 통해 통합된 모습의 자신이 삶을 통해 축적되고 수용소를 통해 부서진 자아와 어긋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아가 더 이상 인간의 중심이 아니라는 것이 밝혀졌더라도, 자아가 중심으로서의 최소한의 힘을 가지고 기능을 수행하지 않는 한 자유로운 개인은 성립하지 않는다. 그런데 위젤에게서 자유의 불가능성이 분열로 나타난다면, 앙텔므에게서 그것은 퇴행으로 나타난다. 독일군 퇴각 이후 레지스탕스가 장악한 수용소에서, 사람들은 식사를 하기 위해 실외로 나가야 한다. 살아남으려면 식사를 해야 하기 때문에 지도부는 사람들을 밖으로 내보내려 하지만, 사람들은 바깥의 추위를 두려워한다. 사람들은 나가지 않으려 하면서 “바보처럼comme des buses”, “성난 어린아이처럼comme des enfants furieux” 행동한다.
Un type qui ne peut pas tenir debout se vautre par terre contre le mur.
서서 버틸 수 없는 한 사람이 벽에 대고 땅에 누워서 뒹군다.
Un policier le pousse. Il pleure.
한 경찰이 그를 민다. 그는 운다.
D’autres font semblant de chier et restent assis sur les cuvettes pour ne pas sortir.
다른 이들은 나가지 않기 위해 변기에 앉아 똥을 싸는 척한다.
누워서 뒹굴고, 울고, 변을 보는 척하는 것은 유아의 행태이다. 수용소의 폭력적인 리듬이 지나간 이후 그들은 살아남고 함께 살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생각하는 대신 원하는 것을 지키기 위해 각자 떼를 쓰는 유아로 돌아갔다. 그들이 유아가 되어 무엇이든 들어줄 수 있는 자 없이 홀로 살아남을 수 없다면, 다시 말해 그들이 상징계에서 추방되었다면, 그들은 해방과 함께 부과된 자유를 실현할 수 없을 것이다. 해방 이전까지 증언된 수용소의 현실을 검토해보면, 수인들을 상징계로부터 추방한 요인은 다음 두 가지로 분석할 수 있다. 하나는 언어의 박탈이며, 다른 하나는 폭력의 법칙성 상실이다.
언어의 박탈은 세 가지 차원에서 고찰할 수 있다. 먼저 위젤에 따르면 수인들이 수용소에 가지고 들어온 언어는 수용소 안에서 그 의미와 기능을 잃어버렸다.
On aurait dû inventer un autre langage. Trahie, corrompue, pervertie par l’ennemi, comment pouvait-on réhabiliter et humaniser la parole ? La faim, la soif, la peur, le transport, la sélection, le feu et la cheminée : ces mot signifient certaines choses, mais en ce temps-là elles signifiaient autre chose.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내야 했다. 적들이 배반하고 망가뜨리고 왜곡한 언어를 어떻게 되살려 인간의 것으로 만든단 말인가? 굶주림, 갈증, 공포, 수송, 선발, 불, 굴뚝. 이것들은 무언가를 의미하지만, 그때는 다른 것을 의미했다.
나아가 앙텔므에 따르면 수용소 현실은 수인들에게 상상할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이후의 담론에서 수용소를 언어적으로 재현하는 일의 가능성 및 타당성이 끊임없이 문제시된 데에서도 볼 수 있듯, 수인들에게 수용소 체험은 인간 언어의 지시 능력을 초과하는 현실로 간주되었다.
À peine commencions-nous à raconter, que nous suffoquions. À nous-mêmes, ce que nous avions à dire commençait alors à nous paraître inimaginable.
이야기를 시작하려고만 하면 우리는 숨이 막혔다. 우리들 자신에게조차, 우리가 말해야 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것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레비는 언어의 박탈 문제를 보다 근본적인 차원에서 통찰하였다. 대다수 수인들은 수용소에서 자신을 언어적 존재로 정립하는 데 실패하였다. 프리모 레비는 이 사실을 수인들의 ‘근본적인 무능력’으로, 그들이 수용소의 파괴 과정에 의해 쓰러지게 된 원인으로 제시한다.
Dès leur arrivée au camp, par incapacité foncière, par malchance, ou à la suite d’un incident banal, ils ont été terrassés avant même d’avoir pu s’adapter. Ils sont pris de vitesse : lorsque enfin ils commencent à apprendre l’allemand et à distinquer quelque chose dans l’infernal enchevêtrement de lois et d’interdits, leur corps est déjà miné, et plus rien désormais ne saurait les sauver de la sélection ou de la mort par faiblesse.
근본적인 무능력 때문에, 혹은 불운해서, 아니면 어떤 평범한 사고에 의해 그들은 수용소에 들어오자마자 적응하기도 전에 쓰러졌다. 그들은 추월당했다. 독일어를 배우고, 규율과 금지가 지옥처럼 뒤얽힌 가운데서 무언가를 구별해내려 할 때쯤이면 그들의 육체는 이미 쇠약해져 있었고, 이제 선발이나 극도의 피로로 인한 죽음에서 그들을 구할 수 있는 건 더 이상 없다.
언어 습득이 상징계 진입의 기제라는 전제하에서, 이처럼 복합적으로 일어난 언어의 박탈은 수용소의 마지막 언어였던 폭력적 적자생존의 법칙이 사라지면서 해방된 수인들의 퇴행을 유도한 요인으로 간주할 수 있다.
폭력의 법칙성 상실은 상징계 진입이 근본적으로 폭력적인 절차라는 점에서 수인들이 상징계로부터 추방되었다는 주장을 뒷받침한다. 자유로운 어린이의 거세가 무엇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가르친다면, 수인들에게 작용하는 파괴 과정은 아무것도 해서는 안 된다고 강요한다.
(...) un grand et gros gaillard (...) me l’arrache brutalement. « Warum ? » dis-je dans mon allemand hésitant. « Hier ist kein warum » (ici il n’y a pas de pourquoi), me répond-il en me repoussant rudement à l’intérieur.
L’explication est monstreuse, mais simple : en ce lieu, tout est interdit, non certes pour des raisons inconnues, mais bien parce que c’est là précisément toute la raison d’être du Lager.
키가 크고 뚱뚱한 남자가 창 쪽으로 다가와 난폭하게 그것[고드름]을 빼앗는다. “왜 그러십니까?” 나는 자신 없는 독일어로 말한다. “여기 왜 따위는 없어.” 그가 나를 거칠게 실내로 떠밀며 대답한다.
설명은 끔찍했지만 간단하다. 여기서는 모든 것이 금지되어 있다. 알 수 없는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것이 정확하게 바로 수용소의 존재 이유인 것이다.
금지는 사회의 원리 이상으로 절대적인 것이다. 그런데 위젤의 증언에 따르면 폭력 역시 금지의 수단 이상으로 절대적인 것이다.
Mon père fut pris soudain de coliques. Il se leva et s’en fut vers le Tzigane, lui demandant poliment, en allemand :
― Excusez-moi... Pouvez-vous me dire où se trouvent les toilettes ?
Le Tzigane le dévisagea longuement, des pieds à la tête. Comme s’il avait voulu se convaincre que l’homme qui lui adressait la parole était bien un être en chair et en os, un être vivant avec un corps et un ventre. Ensuite, comme soudain réveillé d’un sommeil léthargique, il allongea à mon père une telle gifle que celui-ci s’écroula, puis regagna sa place à quatre pattes.
아버지가 갑자기 복통을 호소했다. 아버지는 자리에서 일어나 집시에게 가서 독일어로 공손하게 물었다.
“저, 화장실이 어딥니까?”
집시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아버지를 한참 노려보았다. 마치 자신에게 말을 건 것이 정말로 살과 뼈로 이루어진 존재, 몸뚱이와 배가 있는 살아 있는 존재인지 확인하려는 것처럼. 그러더니 혼수 상태의 긴 잠에서 갑자기 깨어난 듯 아버지의 따귀를 때렸다. 아버지는 넘어져서 제자리로 기어 돌아갔다.
위젤은 집시의 구타를 불가해한 폭력으로 묘사한다. 그것은 집합중의 질문이 금지되어 있다는 것 이상을 표상한다. 이것은 그 자체로 존재하는 폭력으로서 무의미한 것이고, 무의미한 죽음의 예고일 뿐 삶의 규율로 내재화될 수 없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폭력은 삶에 개입할 수 있는 능력을 잃고 죽음의 자리로 돌아간다.
Vous êtes à Auschwitz. Et Auschwitz n’est pas une maison de convalescence. C’est un camp de concentration. Ici, vous dever travailler. Sinon, vous irez droit à la cheminée. Au crématoire. Travailler ou le crématoire ― le choix est entre vos mains.
너희는 아우슈비츠에 있다. 아우슈비츠는 요양원이 아니고 강제 수용소다. 너희는 여기서 일해야 한다. 아니면 곧장 굴뚝이다. 화장터로 간다. 일이냐 화장터냐, 알아서 선택해라.
이와 같은 폭력은 수용소 이전에 수인들에게 내재화되어 그들을 사회적 존재로 정립시켰던 상징계적 폭력을 해체시키는 심층적인 폭력으로 작용한다. 이는 해방된 수인들의 퇴행과 분열을 동시에 설명한다. 수인들은 상징계적 법칙과 함께 자기 존재의 정당성, 그리고 자신이 존재하고 있다는 느낌을 잃는다. 근본적인 폭력에 의해 자유로운 개인으로서의 구조가 파괴된 이후에도 남아있는 것은 잉여이며 ‘시체’이다.
이상의 논의에 의해 우리는 해방과 함께 수인들에게 자유가 주어졌지만 또한 그들이 자유를 자기 것으로 떠맡을 수 없게 만든 근본적인 훼손이 존재한다는 결론에 이를 수 있다. 3장에서는 자유를 자유로운 개인들이 사회를 구성하는 원리로 상정하면서, 수용소 현실이 해방된 수인들의 자유를 위협할 뿐만 아니라 근대적 자유 개념에 대한 전반적인 재고를 요청한다는 주장으로 논의를 확장할 것이다.
3. 자유의 위기: 사회적 관점
자유로운 개인으로서 자아를 되찾는 일과 함께 해방된 수인들에게 주어진 과제는 하나의 사회를 구성하고, 그 사회에 자신을 통합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해방 직후의 상황에서 이 과제에는 두 가지 조건이 있다. 하나는 그들이 사회를 이루어야 하는 공간이 전날의 물질적 조건들을 그대로 간직한 수용소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여전한 수용소 공간에서 사회를 재건해내는 원리가 전적으로 탈-수용소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앙텔므가 보여주듯, 독일어로 명령하는 관료들fonction-naires은 결코 정당성을 인정받지 못할뿐더러 사람들의 집단적 퇴행에서 볼 수 있듯 아노미 상태를 극대화하기만 할 것이다. 그러나 500명의 사람들이 하나의 막사에서 밥을 먹고 잠을 자야 한다는 문제가 있다. 어느 누구도 『인간』의 화자처럼 잠자리를 구하지 못한 채 담배를 나눠 피우며 밤을 새는 상태를 지속할 수는 없다. 어느 집단도 계획된 질서 없이 500명에게 세 끼 밥을 배식할 수는 없다. 한편 이들의 사회에서 자율적인 배식 체계를 정비하거나 부당한 지배에 맞설 수 있는 자치 능력이 정비되어 있지 않다는 점은 앞에서 본 바와 같다. 따라서 유아들의 군집 위에 관료들이 등장하는 것이 필연적이다. 문제는 이 관료제가 생겨나자마자 기만적 성격을 드러낸다는 데 있다.
Alors, nous sommes cinq cents dans ce block. Il faut un compromis. Il faudrait que nous consentions à un minimum de discipline, mais il faudrait que les fonctionnaires fassent maintenant plus d’efforts que jamais pour éviter à chacun (...) de souffir inutilement. Mais certains conservent le style d’avant-hier, et c’est ça qui nous rend fous. S’il est possible de servir la soupe dedans, on doit nous épargner de sortir, puisque nous tremblons de froid dehors.
C’était possible. L’ordre qu’il pouvait être devenu si tentant de lancer à une masse de cinq cents types, alle heraus ! a été retenu. Nous avons mangé la soupe dedans.
당시 블록 안의 우리들은 오백 명이었다. 타협해야 한다. 우리는 최소한의 규율에 동의해야 했다. 관료들은 지금 각자가 무의미하게 고통받는 것을 피하기 위해 어느 때보다도 최선을 다해야 했다. 그러나 몇몇은 그저께 식으로 행동하고 있다. 그것이 우리를 미치게 만드는 것이다. 밖에서는 우리가 추위에 떨 것이기 때문에, 안에서 수프를 먹는 것이 가능하다면 우리를 나가지 않게 해야 한다.
그것은 가능한 일이었다. 500명에게 내리기에 아주 매력적인 것이 되었을 그 명령, ‘모두 밖으로!’가 유보되었다. 우리는 안에서 수프를 먹었다.
실외 배식은 관료제의 효율성을 높이는 방안이다. 실내 배식이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관료들은 선택지를 “처먹고 얼어 죽느냐, 못 먹고 따뜻하게 있느냐”로 좁힌다. 관료제 자체의 효율성을 추구하는 이들의 행정은 필요 이상의 목적으로 집단을 통제하기 위해 관료제에 과다한 힘을 부여한다. 이 메커니즘은 관료 기구의 자가 증식을 초래할 것이며, 비대해진 관료 기구의 효율적 운영을 위해서는 인민들에게 더 강력한 권력이 행사되어야 할 것이다. 앙텔므는 해방된 수용소에서 성립된 사회 계약이 순식간에 관료제의 악순환으로 넘어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요컨대 모든 수인들에게 동일한 자유가 주어졌으나, 이 자유의 일부를 양도하여 생명과 공공의 안전을 확보한다는 논리는 수용소 해방의 국면에서 애초에 불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자율적 관료제의 탄생과 함께 해방의 자유를 위협하는 두 번째 요인은 불평등한 계급의 탄생이다. 이는 아우슈비츠에서 독일군의 퇴각과 소련군의 도착 사이의 열흘 동안에 이미 구체화된다. 수용소에 남은 수인들은 환자들로서 전반적으로 자급자족의 능력이 부족한 사람들이다. 한편 병의 증상에 따라 병실별로 환자들의 생존 능력은 각기 다르다. 이들을 대상으로 “세상과 시간 바깥의” 원초적 공간에서 원시적인 사회를 재건하는 실험이 실시된다. 원시적인 사회를 구성하는 원칙은 자유이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것은 해방과 함께 주어진 자유밖에 없었다. 사회를 구성하는 원칙 가운데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것은 없었다. 『이것이 인간인가』의 마지막 장은 이 사회 속에서 인간적 원칙들이 되살아나기 시작하는 과정의 묘사인 동시에 그 원칙들 중 그 무엇도 제도화되지 못한 상황의 탐구이다.
이 사회에는 먼저 폭격으로 막사를 잃은 무산자들이 있다. 그런데 레비는 이들을 도울 방법이 없다.
On vit arriver des dizaines de malades, nus et misérables, chassés par le feu qui menaçait leurs baraques : ils demandaient à entrer. Impossibles de les accueillir. Ils insistèrent, suppliant et menaçant dans toutes les langues ; il fallut barricader la porte.
불길로 위협을 받는 막사에서 10여 명의 환자들이 헐벗고 처참한 모습으로 오는 것이 보였다. 그들은 자기들을 받아달라고 청했다. 그들을 받아준다는 건 불가능했다. 그들은 여러 언어로 고집을 부리고, 애원하고, 위협했다. 문에 바리케이드를 쳐야 했다.
레비가 죽어가는 타인들의 윤리적 명령에 응답할 수 없는 것은 그들을 통해 레비와 그의 공동체가 질병과 빈곤의 위협에 노출되기 때문이다. 물론 레비의 이기적 행동을 비난하거나 어쩔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 레비의 공동체 역시 위험에 처했을 때 도움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순환하지 않는 나눔을 가지고 개인이 각자의 생명을 혹독하게 책임져야 하는 사회를 대체하기는 불가능하나, 이 사회가 특정한 윤리적 명령에 대해 무능하다는 비판은 피하기 어렵다. 이 원시적 자유주의 사회에는 전제와 한계가 있다. 전제는 사회 안에서 나의 자유와 타인의 자유가 대등하게 만난다는 것이고, 한계는 그 전제가 사실과 다르다는 것이다. 수용소 세계의 예속에서 해방된다는 의미에서 자유는 동등하게 실현되었으나, 상이한 생존 조건에 처한 사람들이 부족과 위험을 조건으로 사회를 구성할 때 그들의 자유는 비대칭적이다.
프리모 레비의 병실은 자급자족이 겨우 가능한 공동체이다. 그들의 생산 활동은 당일의 식량을 마련할 수 있는 정도에 그친다. 그들은 자원의 출처를 보존하여 생산을 지속할 수 있을 만큼의 능력은 가지고 있으나, 수용소 바깥의 부를 찾아 원정을 할 수 있을 만큼의 힘은 갖추지 못했다. 이 경제 공동체는 가족의 형태를 띠고 있다. 열한 명의 구성원 중에서 세 명(프리모 레비, 샤를, 아르튀르)는 바깥에서 생산 활동에 종사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네 명(토바로프스키, 세르텔레, 알칼레, 솅크)은 병약하지만 가사 노동을 도울 수 있는 반면, 세 명(카뇰라티, 라크마커, 도르제)은 다른 사람들의 보호가 있어야만 생존할 수 있고 한 명(쇼마지)은 죽어가고 있다. 프리모 레비는 이 공동체의 경제적, 정치적 삶을 책임지는 가장으로서 가족들에게 중간계급의 원칙을 선포한다.
Moi, je me disais que dehors la vie était belle, qu’elle le serait encore, et que ce serait vraiment dommage de se laisser sombrer maintenant. J’éveillai ceux des malades qui somnolaient, et lorsque je fus certain qu’ils m’écoutaient tous, je leur dis, d’abord en français, puis dans mon meilleur allemand, que nous devions tous désormais ne plus penser qu’à rentrer chez nous, et que nous devions donc, dans la mesure de nos moyens, faire certains choses, et éviter d’en faire d’autres. (...) si quelqu’un avait besoinde quoi que ce soit, il n’avait qu’à adresser à l’un de nous trois, et à personne d’autre.
나는 바깥의 삶이 아름답고, 여전히 아름다울 것이며 지금 우리가 사라지게 된다면 정말 안타까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난 졸고 있는 환자들을 깨웠다. 그리고 모두 내 말을 듣고 있다고 확신했을 때 그들에게 말했다. 처음에는 프랑스어로, 다음에는 독일어로 최선을 다해 말했다. 우리는 이제 집에 돌아갈 생각만을 해야 한다고, 우리에게 달려 있는 문제들에 대해서는 몇 가지 꼭 해야 할 일이 있고 꼭 피해야 할 일이 있다고. (...) 뭔가 필요하면 우리 세 사람에게 말해야 한다. 다른 사람에게 말해선 안 된다.
단결한 중간계급은 최초의 요리된 식사인 죽을 만들어낸다. 소문이 퍼지지만 앞서 설명한 원칙에 따라 무산자들은 죽에 접근할 수 없다. 그러나 중간계급끼리는 물물교환이 이루어진다. 최초의 의복을 만들어낸 막심은 그것을 죽과 바꾼다.
한편 14호 막사의 건강한 자들은 먼 영국인 전쟁포로 수용소로 원정을 감행하여 군복, 기름, 콩가루, 위스키 같은 잉여 생산물을 만들어냈다. “재화의 불균등한 분배는 상업과 노동의 소생을 일으켰다.” 레비의 가족 공동체는 판매용 양초를 생산하여 돼지기름과 콩가루를 구입한다. 레비의 이야기 속에서 경제적 계급이 분화되는 시점과 노동이 상품화되는 시점은 같다.
레비는 공산당원 레지스탕스다운 철저함으로 노동 상품화의 다음 단계를 통찰한다. 열한 명의 경제 공동체를 통솔하는 레비는 밀랍을 찾아내자 그 용도를 비밀에 부쳐 양초 산업을 독점한다. 잉여 생산물의 독점은 곧 부르주아로의 상승 통로이다.
C’était moi qui avais trouvé le bloc de cire vierge dans l’Elektromagazin (l’entrepôt de matériel électrique). Je me rappelle encore l’expression désappointée de ceux qui me virent partir avec, et du dialogue qui s’ensuivit :
― Qu’est-ce que tu vas en faire ?
Ce n’était pas le moment de divulguer un secret de fabrication.
엘렉트로마가친(전기용품 창고)에서 새 밀랍 덩이를 찾아낸 것은 나였다. 내가 그걸 가지고 오는 것을 본 사람들의 실망스런 요정과 그 뒤에 이어지던 질문이 생각난다.
“그걸로 대체 뭘 하려고?”
제조의 비밀을 밝힐 때가 아니었다.
반면 재단사이자 개인 수공업자인 막심이 최초의 거래 사흘 뒤인 이 시점까지 생명을 유지하고 있을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우리가 일시적으로 지칭한 중간계급은 이제 진정한 의미에서 불안정한 중간계급이 된다. 산업화의 진전이 자본주의적 계급의 분화를 촉진한다면 우리는 레비 공동체의 자유, 그리고 “우리 열한 명의 환자들을 이어주는 끈”의 존속을 확신할 수 없다. 이처럼 계급의 분화는 두 가지 방향에서 자유의 가치를 위협한다. 무산자들의 경우에는 자유 자체가 생존의 위협 앞에 무의미해진다는 점에서, 유산자들의 경우에는 자유로운 노동이 교환 가치로 환산되는 노동의 소외가 발생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중간계급은 근본적인 취약성을 가지고 있다.
이처럼 해방된 수용소 세계에서 자율적 관료제와 계급의 분화가 자생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우리는 수용소 해방이 수인들에게 가져다 준 것이 자유라고 불릴 자격이 있는지 의심하게 된다. 세 명의 작가가 자유를 작품의 마지막 화두로 삼으면서, 특히 로베르 앙텔므가 “우리는 자유다”라는 말로 책을 끝맺으면서 노리는 것은 오랜 부자유의 대단원으로 자유의 회복을 제시하는 데 있지 않으며, 오히려 현대의 독자들이 이미 알고 있을 것 같은 자유의 개념을 다시 생각하게 만다는 데 있다. 나아가 생존자 그 누구도 수용소에서 상상하던 그대로 자유롭게 살 수 없다면 어떠한 기준을 가지고 수용소와 바깥 세계가 서로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주장할 수 있겠는가? 호르헤 셈프룬이 프리모 레비의 자살을 추념하는 글에서 인용한 레비의 문장은 우리 자유로운 세계의 허망함을 깊이 생각하게 만든다.
오직 수용소를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진실이 아니다. 나머지는 감각의 착각인 불확실한 꿈이고 짧은 휴식일 뿐이다……
III. 결론
우리는 수용소 증언 문학에 나타난 해방 장면에서 자유의 문제가 반복적인 화두가 되고 있음을 발견하였고, 수용소 안과 밖에서 자유가 각각 의미하는 바에 불연속성이 있음을 확인하면서 이 두 자유가 보편적이고 현실적인 자유로 통합될 수 있는지 질문하였다. 해방이 자유라는 이름으로 주어졌다면, 수용소 바깥에서야 도래하는 이 자유는 수용소 바깥의 원리에 따라 자율적인 개인의 삶을 구축하는 동시에 자유로운 사회를 구성하는 원리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수용소 해방 이후의 심리적, 사회적 상황은 이 질문의 틀 자체를 문제삼고 있다. 생존자들은 자유로운 주체를 유사하게라도 구축할 수 있는 자아의 경제를 실현시키지 못한다. 그들의 분열과 퇴행은 그간의 수용소 현실이 초래한 언어의 박탈과 폭력의 법칙성 상실에 원인을 두고 있다. 한편 생존자들이 얻어낸 최소한의 자유는 자유로운 개인들의 사회를 구성하기 위한 충분한 토대가 되지 못한다. 우리는 해방 이후 원시적인 사회 상태에서 자율적 관료제와 자본주의적 계급의 분화가 최소한의 자유를 다시 한 번 위협하는 것을 보았다. 요컨대 수용소의 부자유가 완전하고 현실적이라면 해방의 자유는 불완전하고 환상적이다. 이는 부정을 통해 규정할 수는 있지만 긍정적인 의미에서 최종적으로 규정할 수는 없는 근대적 자유 개념의 근본적 모순을 지시하는 동시에, 수용소를 극복하는 역사적 과제가 수용소의 단순한 부정으로 완수될 수 없다는 점을 암시한다.
어떤 식으로든 자유의 완전한 박탈을 겪지 않았다면 우리는 우리가 사회 안에서 확보하고 있는 자유의 자리를 믿을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자유로운’ 사회를 유지하는 꿈일 것이다. 그러나 주지하다시피 나의 자유와 타인의 자유는 비대칭적이다. 우리의 자유를 연장시키는 어떤 수단이 수용소 생존자들의 자유를 영원히 불가능하게 만드는 속박이 될 수도 있다. 우리와 생존자들 사이의 이 비대칭성은 우리에게 두 가지 과제를 남긴다. 하나는 살아 돌아온 타인들의 윤리적 명령을 따라, 그들이 마주친 자유의 아포리아를 통해 자유의 개념을 다시 사유하는 것이다. 이 글은 첫 번째 과제의 기반을 검토하려는 시도이다. 다른 하나는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가 수인들이 죽음 앞에서 꿈꾸어 온 자유로부터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 가늠해보고, 우리 사회가 살아 돌아온 이들을 무사히 통합할 수 있는 환대의 조건들을 얼마나 갖추고 있는지 검토해보는 일이다. 해방 이후, 생존 작가들은 자신이 진정으로 자유로워질 수 있는 곳을 찾기 위해 몸부림쳤다. 엘리 위젤은 시오니즘으로, 호르헤 셈프룬과 다비드 루세는 공산주의로, 임레 케르테스와 프리모 레비는 문학으로, 타데우슈 보로프스키와 마지막 순간의 프리모 레비는 죽음으로. 만일 아우슈비츠의 생존자가 오늘날의 한국 사회로 귀환해야 했다면, 그는 어떻게 살 수 있었을까? 이 질문이 지금 여기에서 우리가 수용소를 계속해서 읽어야 하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 참고문헌 -
김주원, 「수용소 증언 문학 속의 허기와 식사의 환상」, 2009
죠르주 쌍프렝, 임헌 옮김, 『글이냐 삶이냐』, 퇴설당, 1996
Robert Antelme, L’espèce humaine, Gallimard, coll. Tel, 1978(1947)
Primo Levi, Martine Schruoffeneger(tr.), Si c’est un homme, Julliard, 1987 (프리모 레비, 이현경 역, 『이것이 인간인가』, 돌베개, 2007)
Elie Wiesel, La nuit, Les Éditions de Minuit, coll. Double, 2007(1958) (엘리 위젤, 김하락 역, 『나이트』, 예담,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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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방문자 2010/01/22 01:14 편집/삭제 댓글 작성 댓글 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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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방문자 2010/01/29 03:01 편집/삭제 댓글 작성 댓글 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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